우리와 쟤 사이에서
어린애들이 자신들의 우정을 전시하고 과시하는 의도에는 편을 더 선명히 가르려는 의도가 있었다. 어릴수록 그 경계는 더 노골적이고 죄책감도 없었으니 그게 상처로 남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괴롭히는 사람과 당하는 사람이 늘 고정되어 있던 것도 아니고, 하루아침에 그들의 마음은 휙휙 바뀌고 말아서 결국 모두가 가해와 피해를 넘나들었다. 그 양상을 딱 하나로 쪼갤 수도 없다는 게, 모두에게 잘해주는 사람도 나에게는 적이 될 수 있다는 원초적 진리를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와 쟤 사이에서 한동안 쟤의 위치에 있었다. 이유는 원초적으로 ‘우리들‘과 말씨가 다르고, 노는 방식이 다르고, 행색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붙임성이나 말주변을 개발하기는 진작에 포기하고 나는 빠르게 위치를 파악해서 납작 엎드리기를 선택했다. 아이들은 분명한 위계 관계 아래 친함을 유지했고, 조금 익숙해지면 계속 관계에 생채기를 내면서 변화를 꾀했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떨궈지고, 누구는 아주 오랫동안 왕따로 지내야 했다. 나는 한동안 피해자라는 안전한 경계 안에서 불안하고도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서현을 만나고서 많은 게 달라졌다.
서현은 모르는 친구가 없고, 못 하는 운동이 없고, 키도 목소리도 나보다 컸다. 그 당당함에 매료되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 우리가 어떻게 친해진 것인지,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어떻게 그에게 간택당한 것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서현과 친한 아이가 되자 자연스럽게 왕따에서 벗어나고 무리가 생겼다. 서현은 나를 좋아해 줬다. 꾸준히 하굣길에 말을 걸어주고, 어디 사느냐 질문을 쏟아내는 사람은 정말로 서현뿐이었다. 그 시간이 놀랍고 희한해서 왜 나와 놀아주는지 궁금했다. 많고 많은 친구 중에 왜 각별히 챙겨주는지 묻고 싶었다. 그는 나를 실제의 나보다 더 좋게 봐주었지만 그 마음을 받으면서도 그 자격에 대해 따지고 싶었다. 그렇지만 이런 마음을 드러내는 순간 너와 나의 격차가 분명하게 드러날 것을 알아서 그런 마음을 오랫동안 묵혔다. 내가 약한 쪽이라는 걸 굳이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그저 선의로 나를 도와주고 있는 것일까 두려웠다.
서현이 우리 집에 온 날, 그녀는 냉장고 쪽 식탁에 앉아 거무죽죽한 김치를 쭉쭉 찢어 먹고, 밥공기를 금세 비웠다. 우리 집에 와서 밥을 두 공기 먹는 친구는 서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런 사랑스러움을 나의 엄마도 나처럼 사랑했다. 어쩜 아이가 인사성도 바르고 밥도 잘 먹는지 모르겠다고 칭찬을 쉬지도 않았다. 내게 보여준 그의 모습은 참 일관적이었다. 밝게 인사를 하고, 땀을 흘리며 동네를 휩쓸고 다니고, 계속 저변을 넓혀가는 한결같음이 있었다. 나 말고도 많은 사람이 서현을 좋아했다. 모자라지도, 과하지도 않은 그 밝음을, 누군가는 오랫동안 연습해도 가질 수 없는 것들을 그는 천부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질투조차 나지 않았다. 나와 완전히 다른 사람의 세상이 너무 활기차고 반짝여서, 계속 그 삶에 빠져들었다. 무서워서 안 하던 피구도, 긴 줄넘기, 장기자랑도 같이 했다. 그 반짝이는 찰나를 스치는 서현의 얼굴은. 웃음이 많고, 승부욕은 있지만 졌다고 화내지는 않고, 금방 잊고 다른 놀이를 찾고, 함께 춤추게 만드는 얼굴. 내가 바라보는 서현은 점점 넓어지고 깊어졌다. 혼자서는 절대 하지 못할 일을 함께하게 만드는 사람을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학교에서는 늘 사람들 사이에 있는 서현이었지만 우린 둘만의 시간도 많이 보냈다. 서현의 집에서 너구리와 신라면을 섞어 끓여 먹고 영화를 봤다. 재밌는 영화가 있다며 틀어준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모험>은 스무 번도 넘게 봤다. 그가 내게 준 취향이 자랑스러워서 다른 아이들 사이에서 슬쩍 말하며 뽐내기도 했다. 우리만 아는 것이 있다는 게 소중했다. 서현은 진실을 말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 토실토실 살 오른 슬픔을 서현에게는 별 거 아닌 듯 말할 수 있었다. 그 집요한 듯한 눈빛은 금방 공감과 연민의 눈으로 바뀌었다. 그가 모든 슬픔을 해결해 줄 수는 없지만, 발산하고 토해내는 솔직함은 알려줄 수 있었다. 미운 것들을 종이에 적고 찢어 베란다 밖 허공에 날렸다. 나쁜 짓을 하고 있다는 죄책감보다 그가 준 위로가 컸다.
서현은 다른 사람이 말하는 왕따에 관한 건 전혀 들리지 않는 듯 나를 자신의 세계로 데려갔다. 세상의 온갖 프리패스 티켓을 끊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의 친구라는 사실만으로 나는 조건 없이 또래 집단에 편입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재능을 잘 활용해서 선생님에게도, 친구에게도, 어른에게도,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매력을 흩뿌리며 다녔다. 그 향기로운 길을 따라 걸으며 서현을 응원했다. 그가 더 멀리 가서 또 다른 세계를 소개해 주길 기다렸다.
내게 남은 서현과의 기억들이 선명해서 그와, 그 힘을 계속 옹호할 수밖에 없다. 온전히 설 수 없는 세계에서 우뚝 팔을 잡아주던 단단한 아귀힘을 잊을 수가 없어서 그렇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았고, 그 중 서현은 앞뒤를 따지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물론 모든 게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었다. 초등학생을 지나자, 새로운 얼굴만큼 우리의 전략도 달라져야 했다. 피구만 잘하는 게 아니라 화장도 잘해야 했다. 욕도, 공부도, 고데기도 잘하는 애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예민하고 뾰족한 건 자부심이었다. 더 이상 포용이 통하는 시기는 지나버렸다.
서현이 어떤 중학생이 되었는지는 모른다. 열네살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이사 갔기 때문이다. 누구처럼 철철 울지도 않았고, 보고 싶다며 청승 떨지도 않았다. 나도 그가 사라지고 나서 다시 닫힌 인간이 됐다. 서현의 방식이 궁금했다. 늘 나보다 앞서있던 그가 이 변화를 어떻게 마주할지 궁금했다. 그의 열린 마음을 다시 볼 수 있다면 나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동안 서현의 집 앞을 지나갈 때, 가끔 그가 전화하며 손을 흔들던 베란다의 풍경을 포개어 봤다. 앞으로도 내 삶에 이렇게 불쑥 나타나 주는 사람이 있을지. 그리고 그 빈자리를 어떻게 메워 나갈 수 있는지 생각해 봐야 했다.
이방인인 나를 들여봐주던 서현이 이방인이 되었다는 게, 변해버린 구도가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서현은 이방인의 삶을 겪어서는 안 됐다. 웃길 줄 알고 웃을 줄도 아는 사람은,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는 누군가를 수면 위로 바짝 끌어올릴 힘을 가진 사람은 아픈 걸 몰라야 했다. 아주 오랫동안 너를 생각하고 있다고. 한결같이 누군가를 찾아주는 그 마음을 분명 돌려받을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서현의 곁에 서 있고 싶었다.
사실 어떤 면에서는 서현은 불리했다. 발산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실수를 하기 마련이었고, 자신을 점점 더 많이 보여줘야 했다. 그에 비해 나는 그 모습에 응원과 위로를 보내면 됐다. 그러니 서현은 가장 힘이 센 아이기도 했지만 가장 약한 아이기도 했다. 제일 패를 많이 보여야 하는 사람이 가장 깊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뒤늦게 한다. 누구에게도 보일 수 없는 내밀함을 가진 서현을 생각한다. 이끄는 게 익숙한 애들. 중간에서 놀 수 없고 이쪽이든 저쪽이든 치우쳐 가야 하는 그의 슬프고 아름다운 천성을 멀찍이 지켜본다. 그가 가지고 살아야 할 무게를 알았다면 서현은 그만큼의 애정을 내게 줄 수 있었을까. 그래도 서현은 그랬을 것이다. 그런 극단적인 아름다움을 자초하고 마는 사람이니까.
새해를 맞을 때마다 서현을 생각한다. 생일조차 세상 모든 사람이 박을 터뜨리는 날이라는 게 그를 잘 설명해 주는 것 같다. 매년 으레 하듯이 생일 축하와 새해 복을 빌어주는 짧은 카톡에도 늘 자기 같은 이모티콘을 발사하는 서현이 여전히 좋다. 다만 그가 나의 시간에 있어 준 것만큼의 시간을 함께할 수는 없었다는 오랜 아쉬움이, 그가 내게 영원한 짝사랑의 대상이리라는 것처럼 읽힌다. 서현네 거실과 교실, 화장실 속 기억들을 거르고 거른다. 군데군데 머리카락이 비집고 들어가 막힌 수쳇린애들이 자신들의 우정을 전시하고 과시하는 의도에는 편을 더 선명히 가르려는 의도가 있었다. 어릴수록 그 경계는 더 노골적이고 죄책감도 없었으니 그게 상처로 남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괴롭히는 사람과 당하는 사람이 늘 고정되어 있던 것도 아니고, 하루아침에 그들의 마음은 휙휙 바뀌고 말아서 결국 모두가 가해와 피해를 넘나들었다. 그 양상을 딱 하나로 쪼갤 수도 없다는 게, 모두에게 잘해주는 사람도 나에게는 적이 될 수 있다는 원초적 진리를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와 쟤 사이에서 한동안 쟤의 위치에 있었다. 이유는 원초적으로 ‘우리들‘과 말씨가 다르고, 노는 방식이 다르고, 행색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붙임성이나 말주변을 개발하기는 진작에 포기하고 나는 빠르게 위치를 파악해서 납작 엎드리기를 선택했다. 아이들은 분명한 위계 관계 아래 친함을 유지했고, 조금 익숙해지면 계속 관계에 생채기를 내면서 변화를 꾀했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떨궈지고, 누구는 아주 오랫동안 왕따로 지내야 했다. 나는 한동안 피해자라는 안전한 경계 안에서 불안하고도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서현을 만나고서 많은 게 달라졌다.
서현은 모르는 친구가 없고, 못 하는 운동이 없고, 키도 목소리도 나보다 컸다. 그 당당함에 매료되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 우리가 어떻게 친해진 것인지,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어떻게 그에게 간택당한 것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서현과 친한 아이가 되자 자연스럽게 왕따에서 벗어나고 무리가 생겼다. 서현은 나를 좋아해 줬다. 꾸준히 하굣길에 말을 걸어주고, 어디 사느냐 질문을 쏟아내는 사람은 정말로 서현뿐이었다. 그 시간이 놀랍고 희한해서 왜 나와 놀아주는지 궁금했다. 많고 많은 친구 중에 왜 각별히 챙겨주는지 묻고 싶었다. 그는 나를 실제의 나보다 더 좋게 봐주었지만 그 마음을 받으면서도 그 자격에 대해 따지고 싶었다. 그렇지만 이런 마음을 드러내는 순간 너와 나의 격차가 분명하게 드러날 것을 알아서 그런 마음을 오랫동안 묵혔다. 내가 약한 쪽이라는 걸 굳이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그저 선의로 나를 도와주고 있는 것일까 두려웠다.
서현이 우리 집에 온 날, 그녀는 냉장고 쪽 식탁에 앉아 거무죽죽한 김치를 쭉쭉 찢어 먹고, 밥공기를 금세 비웠다. 우리 집에 와서 밥을 두 공기 먹는 친구는 서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런 사랑스러움을 나의 엄마도 나처럼 사랑했다. 어쩜 아이가 인사성도 바르고 밥도 잘 먹는지 모르겠다고 칭찬을 쉬지도 않았다. 내게 보여준 그의 모습은 참 일관적이었다. 밝게 인사를 하고, 땀을 흘리며 동네를 휩쓸고 다니고, 계속 저변을 넓혀가는 한결같음이 있었다. 나 말고도 많은 사람이 서현을 좋아했다. 모자라지도, 과하지도 않은 그 밝음을, 누군가는 오랫동안 연습해도 가질 수 없는 것들을 그는 천부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질투조차 나지 않았다. 나와 완전히 다른 사람의 세상이 너무 활기차고 반짝여서, 계속 그 삶에 빠져들었다. 무서워서 안 하던 피구도, 긴 줄넘기, 장기자랑도 같이 했다. 그 반짝이는 찰나를 스치는 서현의 얼굴은. 웃음이 많고, 승부욕은 있지만 졌다고 화내지는 않고, 금방 잊고 다른 놀이를 찾고, 함께 춤추게 만드는 얼굴. 내가 바라보는 서현은 점점 넓어지고 깊어졌다. 혼자서는 절대 하지 못할 일을 함께하게 만드는 사람을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학교에서는 늘 사람들 사이에 있는 서현이었지만 우린 둘만의 시간도 많이 보냈다. 서현의 집에서 너구리와 신라면을 섞어 끓여 먹고 영화를 봤다. 재밌는 영화가 있다며 틀어준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모험>은 스무 번도 넘게 봤다. 그가 내게 준 취향이 자랑스러워서 다른 아이들 사이에서 슬쩍 말하며 뽐내기도 했다. 우리만 아는 것이 있다는 게 소중했다. 서현은 진실을 말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 토실토실 살 오른 슬픔을 서현에게는 별 거 아닌 듯 말할 수 있었다. 그 집요한 듯한 눈빛은 금방 공감과 연민의 눈으로 바뀌었다. 그가 모든 슬픔을 해결해 줄 수는 없지만, 발산하고 토해내는 솔직함은 알려줄 수 있었다. 미운 것들을 종이에 적고 찢어 베란다 밖 허공에 날렸다. 나쁜 짓을 하고 있다는 죄책감보다 그가 준 위로가 컸다.
서현은 다른 사람이 말하는 왕따에 관한 건 전혀 들리지 않는 듯 나를 자신의 세계로 데려갔다. 세상의 온갖 프리패스 티켓을 끊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의 친구라는 사실만으로 나는 조건 없이 또래 집단에 편입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재능을 잘 활용해서 선생님에게도, 친구에게도, 어른에게도,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매력을 흩뿌리며 다녔다. 그 향기로운 길을 따라 걸으며 서현을 응원했다. 그가 더 멀리 가서 또 다른 세계를 소개해 주길 기다렸다.
내게 남은 서현과의 기억들이 선명해서 그와, 그 힘을 계속 옹호할 수밖에 없다. 온전히 설 수 없는 세계에서 우뚝 팔을 잡아주던 단단한 아귀힘을 잊을 수가 없어서 그렇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았고, 그 중 서현은 앞뒤를 따지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물론 모든 게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었다. 초등학생을 지나자, 새로운 얼굴만큼 우리의 전략도 달라져야 했다. 피구만 잘하는 게 아니라 화장도 잘해야 했다. 욕도, 공부도, 고데기도 잘하는 애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예민하고 뾰족한 건 자부심이었다. 더 이상 포용이 통하는 시기는 지나버렸다.
서현이 어떤 중학생이 되었는지는 모른다. 열네살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이사 갔기 때문이다. 누구처럼 철철 울지도 않았고, 보고 싶다며 청승 떨지도 않았다. 나도 그가 사라지고 나서 다시 닫힌 인간이 됐다. 서현의 방식이 궁금했다. 늘 나보다 앞서있던 그가 이 변화를 어떻게 마주할지 궁금했다. 그의 열린 마음을 다시 볼 수 있다면 나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동안 서현의 집 앞을 지나갈 때, 가끔 그가 전화하며 손을 흔들던 베란다의 풍경을 포개어 봤다. 앞으로도 내 삶에 이렇게 불쑥 나타나 주는 사람이 있을지. 그리고 그 빈자리를 어떻게 메워 나갈 수 있는지 생각해 봐야 했다.
이방인인 나를 들여봐주던 서현이 이방인이 되었다는 게, 변해버린 구도가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서현은 이방인의 삶을 겪어서는 안 됐다. 웃길 줄 알고 웃을 줄도 아는 사람은,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는 누군가를 수면 위로 바짝 끌어올릴 힘을 가진 사람은 아픈 걸 몰라야 했다. 아주 오랫동안 너를 생각하고 있다고. 한결같이 누군가를 찾아주는 그 마음을 분명 돌려받을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서현의 곁에 서 있고 싶었다.
사실 어떤 면에서는 서현은 불리했다. 발산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실수를 하기 마련이었고, 자신을 점점 더 많이 보여줘야 했다. 그에 비해 나는 그 모습에 응원과 위로를 보내면 됐다. 그러니 서현은 가장 힘이 센 아이기도 했지만 가장 약한 아이기도 했다. 제일 패를 많이 보여야 하는 사람이 가장 깊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뒤늦게 한다. 누구에게도 보일 수 없는 내밀함을 가진 서현을 생각한다. 이끄는 게 익숙한 애들. 중간에서 놀 수 없고 이쪽이든 저쪽이든 치우쳐 가야 하는 그의 슬프고 아름다운 천성을 멀찍이 지켜본다. 그가 가지고 살아야 할 무게를 알았다면 서현은 그만큼의 애정을 내게 줄 수 있었을까. 그래도 서현은 그랬을 것이다. 그런 극단적인 아름다움을 자초하고 마는 사람이니까.
새해를 맞을 때마다 서현을 생각한다. 생일조차 세상 모든 사람이 박을 터뜨리는 날이라는 게 그를 잘 설명해 주는 것 같다. 매년 으레 하듯이 생일 축하와 새해 복을 빌어주는 짧은 카톡에도 늘 자기 같은 이모티콘을 발사하는 서현이 여전히 좋다. 다만 그가 나의 시간에 있어 준 것만큼의 시간을 함께할 수는 없었다는 오랜 아쉬움이, 그가 내게 영원한 짝사랑의 대상이리라는 것처럼 읽힌다. 서현네 거실과 교실, 화장실 속 기억들을 거르고 거른다. 군데군데 머리카락이 비집고 들어가 막힌 수챗구멍처럼 그와의 기억을 오래 담아둔다.
우리는 후덥지근한 바람이 불어오는 열두 살의 여름방학에 만난다. 나는 뜨거운 정류장 의자에 앉았다가 외마디 욕을 내지르고, 서현은 그 모습을 몇 번이고 재현하며 깔깔 웃는다. 그 잠깐의 기억이 여태 생생해서, 그 웃음이 나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생각한다. 네가 말해주던 나로, 너와 달라서 좋아해 주던 나의 삶에 대해서. 그리고 말하지 못했지만, 나의 것보다도 더 사랑하고 동경했던 너의 것들에 대해서 이제야 말해본다.
하자글방 6주차 글감 '금 안 밟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