쿰쿰한 도서관에서
마을에는 즐길 거리가 없었다. 학교 뒷산에 올라가 죽은 뱀을 나뭇가지 매달고 내려오는 고학년 오빠들은 무서운 것보다 지루함을 못 견뎌했다.나도 겁은 많았지만 친구들과 돌로 바닥을 긁으며 노는 것도 지겨워지면 보다 얌전한 방식으로 놀기를 택했다. 농어촌 지원 사업이 물밀듯이 들어온 덕분에 작은 마을 안에 더 작은 도서관 5개가 생겼고, 가끔 오던 책 트럭이 유년기의 컨텐츠를 담당했다. 우리는 도서관과 동네 곳곳의 놀이터를 돌아다니며 나름대로 신나는 여름을 보냈다.
도서관에 관한 최초의 기억은 땀을 뻘뻘 흘리며 놀다 물 마시러 가거나 친구들과 기대어 낮잠 자던 것이다. 아이들이 자면 한 쪽 불을 꺼주고, 물 마시고 땀 식히고 가라는 어른들의 미소들. 아파트 도서관은 무서운 만화책이 많고, 학교 도서관은 유치한 만화책이 많으며 동화책은 작은 도서관에 있었기 때문에 심심하면 날마다의 기분에 따라 독서 원정을 떠나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적극적으로 책을 읽은 건 용인으로 이사한 이후의 일이지만, 기억 속 도서관은 여전히 그 어린이 서가에 머물러 있다. 조용한 에어컨 바람과 한참 뛰어 뜨거워진 정수리, 찬물이 가득 든 속과 친구들이 새근 새근 자는 숨소리가 내게는 유년 시절이자 도서관의 추억이다.
이사하고 나서는 학교 도서관을 정말 좋아했다. 쉬는 시간마다 도서관 어딘가 박혀 있는 아이들이 몇 명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각 반의 관심병사가 모인 형국이었다. 모두를 피해서 책을 읽다보면 비슷한 애들과 이상한 연대를 느꼈다. 서로 말도 걸지 않고 인사 없이도 그냥 그들이 있다는 사실이 한참 힘이 됐다. 당시 나는 입만 열면 어디서 왔냐는 질문을 듣는 것에 진저리가 났기 때문에 말을 안 하는 편을 택했다. 하지만 아무리 입을 다물어도 사서 선생님은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고 도서 행사를 홍보하고 반겨줬다. 그 모든 다정함과 적당한 거리. 무엇이든 바짝 바짝 당겨 안고 앞 사람을 따라가야 하던 대부분의 시간보다 10분,15분의 그 시간들이 가장 크고 따뜻하게 남아있다.
가끔은 중학교 졸업 선물로 사서 선생님에게 받은 올라브 하우게의 시집을 들춰본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시가 주는 쓸쓸함을 좋아한다. 쓸쓸하다 못해 광야에 혼자 있는 듯한 서늘함이 참 좋다. 동시에 선생님이 어떤 마음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는지 생각한다. 이제는 그 마음을 조금 알 것 같다. 그런 어른들이 되고 싶다. 누군가의 잠든 눈꺼풀이 떠질 때까지를 기다려주고 싶다.
눈이 내린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춤추며 내리는 눈송이에
서투른 창이라도 겨눌 것인가
아니면 어린 나무를 감싸 안고
내가 눈을 맞을 것인가
저녁 정원
막대로 들고 다닌다
도우려고.
그저
막대로 두드려주거나
가지 끝을 당겨준다.
사과나무가 휘어졌다가 돌아와 설 때는
온 몸에 눈을 맞는다
얼마나 당당한가 어린 나무들은
바람 아니면
어디에도 굽힌 적이 없다-
바람과의 어울림도
짜릿한 놀이일 뿐이다
열매를 맺어 본 나무들은
한 아름 눈을 안고 있다
안고 있다는 생각도 없이
<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주다> 올라브 하우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