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독백
자작해진 슬픔을 품고 삽니다. 조금 가신 이 마음은 어른이 되어도 나를 종종 막다른 길로 안내합니다. 그 복도에 오랫동안 나를 세워둡니다. 학창 시절 내내 친구도, 어른도 그 누구도 곁에 없었습니다. 나만큼 그 시간을 견딘 사람도 없었습니다. 모두가 자리를 찾아갈 때 홀로 그곳에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나의 피부가 까맣고 깡말라서 싫다고 했습니다. 진한 핑크색 가방이 촌스럽다고 했습니다.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밀치고 욕했습니다. 그 괴롭힘은 아주 오래전에 시작되어서, 누구도 그 상황을 의아해하지 않았습니다. 나의 존재는 그저 괴롭힘의 대상으로만 읽혔고 그러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이름을 바꿔보기도 했지요. 그 이유를 다들 짐작했기 때문에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습니다. 나의 이름은 어느 순간 그 자체로 놀림과 폭력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평범하디 평범한 이름에 누군가는 킥킥대고 누군가는 자신과 이름이 같다며 짜증 냈습니다. 괴롭힘의 수많은 이유 중 바꿀 수 있는 건 이름뿐이었습니다. 새로운 이름은 아무렇지도 않게, 무안할 정도로 빠르게 그 자리를 채웠습니다. 이후에는 이름을 바꾼 것이 괴롭힘을 견디지 못한 투항처럼 여겨져서 그것을 부정하기 위해 삶을 재촉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원래 이름을 아무도 모르는 시간이 되길 기다렸습니다. 그 시점부터는 나의 잘못이 없음을 알아서, 수많은 명분과 이유는 그저 그들의 합리화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우쳤습니다. 속은 괴로움과 분노로 절절 끓기 시작했습니다.
엄마는 또래와 어울리지 못하는 나의 마음을 채워주려는 듯 모든 사랑과 노력을 쏟아부었습니다. 단짝을 만들어 주려 애쓰고, 좋은 친구이자 엄마가 되어주고, 이름도 바꿔주었습니다. 친구의 딸들을 데리고 와 함께 놀도록 했습니다. 억지로 끌려온 아이들은 최선을 다해 나를 놀아주었습니다. 가끔 착각할 만큼 연기를 잘하는 아이도 있었고, 그저 즐겁게 놀다가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일 대 일의 상황에서도 얼굴에 침 뱉을 수 있는 사람은 어른이나 아이나 드물지요. 물론 학교에 가면 없던 일처럼 구는 것은 매한가지였습니다. 엄마가 나를 세상에 내보내려 했던 시도만큼 상처가 남았습니다. 따뜻한 품 안에서 잠깐 우정의 모양을 연습해 봐도 세상은 여전했습니다. 그가 자식을 어여삐 여기는 마음이 애처로워서 자주 버겁고 슬펐습니다. 결국 그의 품조차 떠나야 함을 알고 나서는 다시 또래에게 발길을 돌렸습니다.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은 늘 있었습니다. 말씨가 다른 그 애는 학년 전체의 놀림감이었지요. 그 역시 나처럼 반을 넘어서 모두의 ‘걔’로 불렸습니다. 그 동질성에 연민을 느끼며 상냥히 대했습니다. 그것만이 우리를 친하게 만들지는 않았지만, 가끔 그는 우리 집에 와서 놀고, 복도에서 마주치면 인사했습니다. 비슷한 아픔을 공유하는 것이 안타까우면서도 그 고통이, 나의 순서가 끝날 때까지 그에게도 계속되길 바랐을지도 모릅니다. 함께 매 맞는 동료가 있어 좋았습니다. 하지만 그 애는 구원받았습니다. 좋은 친구와 선생님이 그에게 등장했습니다. 함께 화장실에 가는 친구가 생기고, 누군가 무리 속으로 끌어주었습니다. 나보다도 고립되었다고 생각한 애가 울타리로 들어갔다는 사실에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나도 끼워달라고 하고 싶었습니다. 왜 내게는 철옹성이던 세계가, 그에게는 쉽게 문을 여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차라리 모두에게 사나운 애들이었다면 견딜 수 있었을 텐데, 너와 나의 차이를 알 수 없다는 게 괴로웠습니다.
물론 그 아이도 나를 어딘가로 데려가 주려고 애쓴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그러지 못한 것은 존재감과 영향력 부족이란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가 나를 보며 느끼는 동질감과 죄책감이 가증스러웠습니다. 운 좋게 구원받은 사람은 절대 이 마음을 알 수 없었습니다. 결국 그로 인해 나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을 확언받은 것 같아 슬펐습니다. 내게도 친구가 있었다면 그 이상의 사랑과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다는 사실이, 그 결핍이 엄마가 주는 사랑과 폭발적인 낙차를 만들며 온몸 구석구석을 구멍 냈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경작하지도, 새끼를 돌보지도 못하고 외양간 구석에 발이 묶인 소처럼 천천히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무렵 옆 학교에 다니던 아이가 죽었습니다. 같은 나이였고, 누군가의 친구였던 아이가 죽었습니다. 그 아이는 학교에 오지 않은 날부터 아주 오랫동안 기억됐습니다. 나는 그의 명복을 비면서도, 죽음이 확실한 존재로 남는 방법이라는 생각을 하고 말았습니다. 세상에 흔적을 남길 수 있는 건 죽음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서히 중독됐습니다. 하지만 그 무게에 짓눌리기에는 나의 천성은 너무나 발랄했고, 오랜 폭력으로 강렬한 분노에 잠식됐기 때문에 그 생각을 실현하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이 세계의 탈출 버튼이 죽음으로 완성된다는 희망. 매혹적인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는 그 희망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아이로부터 받았습니다. 누구도 주지 못한 위로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오랜 외로움이 조금 옅어졌습니다.
중학생이 되자 새로운 얼굴이 많아졌습니다. 마음을 여는 듯한 아이들이 금세 나의 과거를 알아챈 듯 멀어지기를 반복했습니다. 사귀고, 싸우고, 화해하고, 멀어지는 것. 누군가에겐 평범한 배움이 멀어져만 갔습니다. 이제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비정하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나를 보호해야 했습니다. 어른들에게라도 사랑받고 싶었습니다. 공부하고, 규칙을 잘 지키고, 아이들의 세계를 떠났습니다. 모범적인 성취를 뽐내는 것만이 존재를 증명하는 유일한 방법처럼 느껴졌습니다.
고등학생이 된 나는 더 이상 누군가가 다가오기를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사랑을 갈구하는 여정을 떠나기를 그만뒀습니다. 오랜 시간을 들여 주인공인 나를 만들고, 그에 맞는 서사를 입히면서 스스로 치유를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누군가가 나를 욕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 줄 수도 있었습니다. 잘난 체하고, 짜증을 내면서 그들이 괴롭힘을 합리화하도록 두었습니다. 왜 이런 삶을 선택했는지 이해해 주리라는 기대는 버리고 길을 걷기로 했습니다. 내가 선택한 길은 가장 성실히 죽음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사소하고 잦은 죽음에 차차 맷집이 세지는 게임 캐릭터처럼, 나 역시 일상적인 폭력 속에서 수명을 연장하는 법을 익혔습니다.
탄식이나 위로의 말은 필요 없습니다. 당신들은 모르겠지만 이 삶에도 기쁨이 있습니다. 당신들의 생각처럼 처참하지 않습니다. 나는 미움 받은 만큼 사랑 받았습니다. 맥락 없는 괴롭힘과 달리 그 사랑은 서서히 온기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엄마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줬습니다. 고슴도치 어미처럼 감싸는 방식이 그의 것이라면 따르기로 했습니다. 유일하게 나를 짝사랑해 주는 엄마에게 보답하고 싶어졌습니다. 간곡한 마음이 준 상처는 엄마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 이제 온전한 나의 세계를 짓기로 했습니다. 다만 그 시간에 다다르기까지 오래 걸어가야 했습니다. 그들이 정말로 잊힐 때까지 계속 이동해야 했습니다. 육신을 떠날 수 없는 순간에도, 정신만큼은 그 너머로 뻗어갔습니다.
촘촘히 새긴 발자국이 나를 증명하고, 키우고, 사랑해 주었습니다. 때문에, 그것들이 없다면 세상에서 배운 비정함을 해석할 수 없으므로 가끔 지난 시간을 돌이켜 봤습니다. 기억을 엮고 찢으며 과거로부터, 스스로부터 멀어지기를 오랫동안 연습했습니다. 수많은 기억 속 그들을 이젠 잊어버리고, 나를 용서할 차례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누구보다 미워한 애를 떠올립니다. 함께 ‘걔’의 처지에 놓여있던 아이를, 혼자 군중 속으로 들어가 버린 그 뒤통수를 오래도록 생각합니다. 기억 속의 그는 여느 때처럼 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연민이 가득한 그 눈빛을 거절합니다. 그리고 그 또한 자신의 삶을 살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를 뒤로하고 긴 복도를 걸어 나옵니다. 점차 머물렀던 폭력의 세상은 작은 점처럼 느껴집니다. 비행기 위에서 순식간에 멀어지는 지상처럼 과거와의 거리감이 아득해집니다.
과거를 두고 떠나온 이곳에서는 다른 삶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나의 옛 이름을 모르는 새로운 사람들뿐입니다. 낯설지만 형형한 생명력 사이에서 비로소 알맞은 토양을 찾은 기분을 만끽합니다. 이제야 내 모습을 온전하게 바라봅니다. 깊은 갈색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새로운 세계의 흙 내음을 품어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 알맞은 자아, 혹은 적어도 의문을 제기 받지 않는 자아를 생득권처럼 타고나지만, 또 어떤 사람은 생존을 위해서든 만족을 위해서든 자신을 새로 만들어내려고 하고 그래서 멀리 여행한다. 어떤 사람은 가치와 관습을 상속받은 집처럼 물려받지만, 어떤 사람은 그 집을 불태워야 하고, 자기만의 땅을 찾아야 하고, 맨땅에서부터 새로 지어야 한다. 리베카 솔닛, ⟪길 잃기 안내서⟫
하자글방 7주차 글감 너-나-들-이
나로부터 떠나와서 타인에게 다가가는 이야기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