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고무줄로 묶은 볼펜 자루
지난 새벽 엄마가 급히 남긴 카톡을 읽고 비상 계단으로 달려갔다. 4인 1실 기숙사에서 아침부터 울고 싶지는 않았다. 보통 울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던 엄마조차 그날만큼은 얼른 기차표를 끊어야 한다 일깨웠다. 일터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리고도 한참 쭈그려 앉아 있고 나서야 방에 돌아갈 수 있었다. 며칠 후 휴무를 위해 꺼내 놓은 가방 속 짐을 미처 뺄 생각도 못 하고 세면도구와 옷을 챙겼다. 심장이 쿵 쿵 뛰었다.
기차역으로 가는 길에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긴 한숨과 감정을 잠재우고 싶은 나의 독백이 이어졌다. 누군가에게는 곧장 말하고 싶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이 사실이 내게 슬픈지, 이상한지, 괴로운지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그냥 사실이 아닌 감정의 흐름을 말할 수 있는 것이 그나마의 위안이었다.
대전역을 지날 때쯤 옆자리에 앉은 학생이 얼음컵을 쏟았다. 꿈처럼 몽롱하고 이상했다. 내 옷에 물이 잔뜩 튀었다는 걸 알았을 때 이미 학생은 기차에서 내려 떠난 후였다. 평소의 나라면 기분이 잔뜩 상해서 곱씹고 곱씹을 일이었는데 오히려 하루의 순서를 주지시키는 역할이 돼주었다. 이 일이 중요한가. 오늘 할아버지가 죽었는데. 얼음을 털고 바닥을 천천히 닦고 나서도 기차는 한참을 갔다. 가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마음속이 점점 고요해졌다. 여전히 명치가 아플 만치 답답했지만, 병상 생활이 시작된 몇 년 전부터 대비해 온 순간이 왔다는 걸 인정할 수 있었다.
그동안 할아버지를 면회하는 일은 내게 가장 괴로운 일이었다. 점점 야위어가는 몸을, 가족을 알아보지 못하고 당황해하는 얼굴을 보는 게 고통스러웠다. 사고가 있었던 몇 년 전부터 그가 이미 죽음을 살고 있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음에도 모두가 이미 퇴행한 그의 기억과 신체를 애써 긍정적으로 보는 순간 역시 그랬다.
병원에 도착해 장례식장을 가는 길을 한참 헤맸다. 오빠에게 전화를 걸고 영정사진이 떠 있는 모니터를 지났다. 한 켠에서 식사를 준비하는 소리가 났고, 빈소는 아직 허전했다. 왈칵 눈물이 났다. 거의 5년을 연습한 죽음인데, 왜 나는 여전히 준비되지 않았을까. 더군다나 나는 할아버지와 가깝지도, 살갑지도 않던 손주인데.
할아버지는 평생 절약 정신이 투철했고, 서랍을 열어보면 어디에선가 받은 볼펜 자루들이 늘 너덜너덜한 노란 고무줄로 묶여 있었다. 명절마다 오빠와 나는 손에 쥐어지는 싸구려 볼펜 자루를 내키지 않아 했다. -할아버지 이거는 안 나와요- 하며 한 자루라도 덜 가져가려 해봐도 몇 번 긁어 쓰고 나면 거짓말처럼 잘 나오던 펜들. 우리는 그걸 방 어딘가에 밀어두고 늘 잊어버렸다.
지난 몇 년간 우리 가족은 그의 물건을 티 나지 않게 조금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빠가, 그다음 몇 년은 명절 거실에서 함께 정리했다. 할아버지가 공부하던 영어 공책과 한자 공책을 버렸을 때도, 샛노랗게 변색된 이면지들을 버렸을 때도 울지 않았다. 하지만 노란 고무줄이 칭칭 묶인 볼펜들이 있는 서랍을 열어볼 때만큼은 할아버지를 이미 없는 사람처럼 여긴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그게 진짜 내 마음일까 봐 두렵고 부끄러웠다.
몇 년간 본 할아버지는 그를 기억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내가 기억하는 모습은 목욕탕에 가고, 공부하고, 낡은 펜을 모아놓고, 이면지를 여백 없이 꼼꼼히 쓰는 모습들이었다. 어쩌면 까다롭고 딱딱한 할아버지가 자신이 누군지조차 잊은 게 화가 났던 것 같다. 당신은 자기 관리를 아주 중요하게 여기던 사람이라고, 그 기백을 좀 다시 찾아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게 슬펐다. 그의 삶이 유약하기만 한 모습은 아니었다는 걸 분명히 하고 싶은데 점점 빛이 꺼져가는 그의 모습이 괴로웠다.
할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어떤 아버지였을까? 라는 물음이 여전히 들 정도로 나는 그를 잘 모르겠다. 그저 내가 기억하는 방식으로 할아버지를 기리면서 노란 고무줄에 묶인 볼펜 자루를 받을 일이 이젠 없다는 사실에 울컥할 뿐이다. 그 볼펜 자루들이 나름의 표현이었다는 사실을 마음에 얹은 채 살아가야 한다는 걸 할아버지를 보내고서 받아들인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 가운데 홀로 외롭게 떠난 건 아니기를. 생의 끝에서는 자신이 누군지 모르는 노인이 아니라 노선우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