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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과 호기심 사이, 고향 다시 읽기

고향 故鄕

  1. 명사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곳.
  2. 명사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
  3. 명사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

나에게는 이 세 가지 의미의 장소가 각기 다르다. 애착 정도에 따르자면 3번이 가장 강하지만 시간의 무게를 따지면 1번의 고향에게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또한 2번 의미의 고향은 다른 두 가지 고향보다는 궁금증에 가깝다.

이 세 가지 의미의 고향이 한 장소에 일치하기를 바랐던 적이 있고, 그런 사람들에게 부러움과 호기심을 동시에 느꼈다. 어느 곳도 온전히 알지 못한다는, 나의 뿌리가 어디 콱 박혀 있지 않다는 생각에 마음만큼은 늘 어딘가에 철썩 달라붙고 싶었다.

고향이나 다름없는 사람들을 만나 "거기 사람 다 됐다"는 소리를 들을 때, 나는 '거기에서도 선 밖으로 늘 밀려났다. 시간이 흘러 상대적 ‘토박이’가 되어도 고향이 아니라며 선을 긋고, 돌아갈 명분과 목적이 없음에도 어딘가로 돌아가고 싶다는 갈증이 계속됐다.

세 가지의 고향을 혼재시키는 머릿속에서 이 생각의 고리를 한 번쯤 정리하고 싶었다. 오랫동안 가지 않은 곳을 정말 고향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계속 장소를 미화하고 있는 건 아닌지 알고 싶었다.

몇 년 전부터 가겠다 말만 하고서 가본 적 없었지만 올 여름은 달랐다. 두려워 하던 취업도, 금새 결심한 퇴사도 얼렁뚱땅 흘러가버려서 현실 감각이 별로 없었다. 그 덕에 충동적으로 기차표를 끊었다.

얼떨떨하게 도착한 역으로 작은 이모가 마중을 나왔다. 처음 와보는 역 근처는 아무것도 없었고 도로를 달리면서 목요일에 함께 마을로 가자고 했다. 둘 다 어색하지 않으려고 성실히 말을 하다가 포기하고 어색한 채로 도로 주변 식당에 내렸다. 주변 지리를 가이드처럼 설명하던 이모가 대체 무엇을 보고 싶은 거냐 물었다. 막연하게 상상한 것이 있기는 했지만 정확히 말로 할 수가 없어서 그냥 퇴사 여행이라고 얼버무렸다. 나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설명할 재주는 없었다. 초저녁부터 잔을 주고 받던 아저씨들이 큰 소리로 말하기 시작하자 우리는 말 없이 밥을 먹었다.

고향 마을에 가기 며칠 전 동안은 외지인의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새로 지었다는 도서관에 가서 앉아 있다가 재개발 지역을 둘러보고, 매끈하고 허연 미술관 안에서 서성이다 다시 오래된 골목으로 들어갔다. 차라리 고향도 재개발이 되어 사라졌다면, 그리워할 일말의 여지도 없었다면 오히려 깔끔해질까. 의미없는 질문을 하고 있자니 왠지 무기력했다.

또 며칠을 보내고 12년 만에 도착한 고향은 허무할 만큼 변한 게 없었다. 없던 것들이 생기기는 했지만, 대부분이 남아있었다. 너무 변해서 서운하면 어쩌나 걱정한 게 무색할 만큼이었다.

그 시간의 간극을 느낀 건 그저 조금씩 변하는 과정을 보지 못한 것. 장소가 열심히 숨 쉬는 동안 나는 이 곳에 없었다는 인식에서였다. 내가 기억하고, 보고 있는 시공간을 묘한 기분으로 눌러 삼켰다. 분명 묘한데 예상한 감정은 아니었다. 여전한 모습을 보고 안도감을 느끼지도, 그렇다고 아쉽지도 않았다. 그냥 내게 필요했던 건 나름대로 장소를 이해하고 기억하고 떠나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었다. 종업식 날 놀이터로 향하는 친구들과 반대 방향으로 가던 그 순간을 여전히 놓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과 함께.

나를 놀라게 한 건 여전한 동네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었다. 문구점 아저씨도, 자주 가던 동네 마트도, 학교 앞 분식집도 그대로였다. 분명 알아보게 되는 사람들과 장소가 있다는 게 반갑고 소중했다. 그들이 기억하지 못해도 내 기억 속에 살아 있고 그 차이가 인생의 아이러니니까. 작은 마을을 거의 벗어나지 않은 채 보낸 협소한 시공간을 요약하면 사람과의 교류를 빼고 설명할 수 없어서. 그러니까 그 세계가 아주 협소한 대신 깊었기 때문에 더 애착 같은 집착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처음에 고향은 없는 거라고 말하고 싶었다. 공간은 정지해 있지 않고 우리가 믿는 고향은 한 가지 시점의 정지된 순간을 욕망하는 것이라 단언하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생생한 기억의 현신을 마주하고 나니 나는 고향을 부정하고 싶다기보다 더 확장하고 싶었다는 걸 알았다. 국어사전의 세 가지 의미뿐 아니라 훨씬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걸 잘 설명해 내고 싶었다. 고향의 맛이라는 표현처럼 우리는 고향을 오감으로 느낀다. 어쩌면 나는 오직 나만을 향해 정지해 있는 시간과 사람들만을 원하면서 고향을 아주 단적으로만 이해해 온 것이다.

외지인의 자아를 즐기는 동안 내심 외로웠던 건 고독을 좋아하는 성정과는 상반되는 무언가였다. 그 차이가 능동적이냐 수동적이냐라는 것을 느낀 순간부터 이 모든 궁금증이 시작된 것 같다. 삶 전반의 맥박이 한 장소에 남아 있는 삶이 궁금했다. 그 호기심을 중심으로 옮기고 치우고를 반복하는 사이, 연고는 없지만 살고 싶은 도시가 생겼다. 그리고 그 곳을 고향이라고 생각하고 싶어졌다. 연고가 없지만 정들기를 선택한 곳. 그게 내가 지향하는 고향이자 사전에는 없는 네번째 정의다.

모든 것이 변하기 때문에 좋다. 더 이상 남아있지 않는 가게 자리에는 새로운 슈퍼가 들어와 있고,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는 식당도 있다. 그 기억 속 왜곡을 맞추며 고향을 만난다. 나뿐 아니라 고향도 무수히 꿈틀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뒤틀린 채 설익었던 감정도 조금 잦아든다.

스스로 선택한 시공간에 대한 기쁨은 번져가고, 새로운 장소를 알아가는 일에 고양될 수 있다 믿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고향을 내 의지와 관계없이 떠났다는 그리움도 여전히 있다. 계속 그리움과 모험심이 함께 하고 그것도 나를 설명하는 곁가지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앞으로 계속 만날 장소들을 네 번째 의미의 고향으로 믿으면서 말이다.

사람은 그리워할 대상을 영원히 찾고 계속 옮겨간다. 고향을, 사람을, 한 순간을 그리워하고 욕망하는 것처럼. 고향을 짙은 향수의 공간으로 인식하는 까닭은 돌아갈 수 없는 시간에 대한 갈망 아닐까. 고향은 정지해 있는 곳이 아니라 움직이는 곳이다. 시공간을 누군가만을 위해 정지해 있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는다는 사실이 나를 움직이도록 재촉한다. 아주 활기차고 부지런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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