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 00
좋아하는 것에 대한 온도가 꼭 뜨거워야 할까? 세빈은 한 번의 공연을 위해 홍콩을 가는데, 좋아하는 것을 공부하기 위해 학과를 바꾸고 저 하늘로 날아가는데 늘 미적지근하게 좋아하는 것들이 어떤 때는 부끄럽고 어떤 때는 금방 잊혀버린다. 그렇게 잊은 나의 사랑들. 대충 좋아하면 금방 까먹는다.
평생 고대하는 건 말끔히 사라지는 것. 어딘가에서 어딘가로. 무엇에서 없음으로. 그러기 위해 구태여 돌아가기와 고생하기. 어쩌면 내가 좋아하는 건 고생하는 것. 데굴 데굴 굴러다니는 것. 내가 좋아하는 여행은 노동과 밀접한 것들. 고생에서 도망가기. 고생에서 고생으로. 피로에서 피로로 도피하기. 아파트 단지 사이 편의점에서 3년을. 비빔밥 집에서 2년. 어린이들과 1년. 그 외 방광염 걸리는 노동에서 노동 사이를 건너고 건너서. 새로운 피로로 갈아타기를 반복하면서. 그렇게 해서 남는 게 무엇인가 하면 더 큰 도피와 더 큰 포기가 있다.
내가 좋다는 사람들이 말하는 나는 비슷비슷했다. 궂은 일 마다하지 않고, 생활력이 강한 사람. 어딜 가도 알아서 잘 살 것 같은 사람. 반은 맞고 반은 아니다. 성인이 돼서 첫 해의 나는 부모 사이에 나란히 누워 가만히 새벽을 새는 사람이니까. 그런 것들을 소상히 말하기에는 나도 당신들도 서로가 그렇게 궁금하지는 않다. 그리고 그들의 말이 반쪽 정도는 맞는 말이다. 나는 고생이 좋으니까. 깎이고 깎여서 내가 사라지는 기분을 어느정도 즐기니까. 내 부분 부분을 일터에, 퇴근길에 어딘가에 버리고 오는 게 좋으니까.
친구 따라 강남 간다며 파리에서 함께 좋은 식당도 가보고 화장실 있는 에어비앤비에서도 잤다. 좋으면서도 가랑이 찢어졌다. 암스테르담에서 헤어지고 독일로 넘어왔더니 공항 갈 때 탈 지하철 요금이랑 식당 한 번 갈 수 있는 돈이 남았다. 심신미약 상태로 길거리를 거닐다가 2유로 짜리 케밥을 먹었다. 오랜만에 도는 기름기와 매운기에 한참을 화장실에서 못 나왔다.베를린에 온 지 이틀 째. 모포 한 장 주는 대안 공동체에서 목 칼칼하게 누워있는 게 왠지 더 잘 어울린다. 서른다섯이랬나 아무튼 옆 침대 독일인 농부는 친구랑 놀다 들어와서는 담요로 이층 침대 한 켠에 커튼을 쳐주었다. 침대에서 머리가 보이면 위험해. 밤에는 역으로 가지 마. 사무실로 가면 따뜻한 물을 먹을 수 있어.
암스테르담에서 옮은 독한 감기에 베를린에서는 요양만 했다. 한국 계좌에 남아 있는 돈을 조금 더 끌어와서 늘봄에게 추천받은 스파에 갔다. 깨벗은 사람들과 함께 향기로운 방에 들어갔던 것도 같은데... 분별 없이 사먹은 약 기운에 졸음이 몰려왔다. 그래도 때 빼고 광내고 나와 마지막 남은 마트 빵을 먹고 물병 분리수거해 다시 마트빵 한 봉지 샀다. 열흘 동안 굶주리며 비행기에서 먹을 기내식을 상상했다.
코가 째로 떨어질 것 같은 날씨에 겨우 나가 눈에만 많이 많이 담고, 기부 공연은 공짜. 사람 구경도 공짜. 나는 역시 공짜가 제일로 좋다. 여행 다녀와 손에 남은 건 다 떨어져가는 부츠 한 짝이랑 친구가 골라준 털모자지만 아무래도 좋다.
사실 일을 안 했다면 여행을 오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멀리 멀리 도망가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하루를 내내 돈과 노동에 대한 생각만 하다보니 누구도 나를 모르고 관심도 없을 것 같은 기분에 좀 취하고 싶었다. 멋진 건축물들 사진도 좀 찍고 뽐내고도 싶었다.
아르바이트 하면 어때? 너무 몰라서 순수한 질문에 답을 못했다. 상속세 걱정하는 세계는 모르는 일이 있단다. 둘이 사는 친구의 친구네 자취방은 네 명이 사는 우리 집보다 컸다. 그 집 너른 화장실에서 앉아 생각했다. 팔자 참 좋다. 남자친구랑 헤어져 파티 내내 우는 소녀를 달래는 그녀는 애처로웠다. 다른 세계의 사람들과 산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나는 벌써 가랑이가 찢어질 것 같은데 너는 어떤 기분일까? 우리는 영영 멀어졌지만 여전히 그 생각을 한다. 네가 나의 고생을 모르듯 나도 너의 고생을 몰랐거든. 너의 세계를 한 번 엿보자 마자 손이 데이고 입 천장이 꺼끌해지는 기분이었다는 마음을 오랫동안 비겁하게 감춘 채로 그냥 산다. 미안한 것들에 전부 미안해 할 수는 없다.
돈은 내게 족쇄 같았다. 스스로 해결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는 것들. 당연히 일은 하면 할수록 잘하지만 그걸 인정 해주는 세계는 별로 없다. 경력은 없으세요? 인턴 경험은요? 대학교 때 뭐 하셨어요? 라는 말에 깔리고 눌릴 때마다 아르바이트 하는 기분을 말해야 하던 넓은 거실로 돌아간다.
전공 적합성 물경력 속에서 도망치고 도망쳤더니 그게 다시 학교네. 사실 이것도 일종의 고생 아닌가. 스무살들과 수업을 듣고, 나이에 뜨악하는 표정을 몇 번 보고, 우악스럽게 술 마시는 게 싫다고 속으로 생각하고. 들입다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하는 시간들이. 대학원 갔냐는 물음에 대학교 들어갔다고 오십번쯤 대답하는 거.
그래도 여전히 비효율이 좋다. 효율적인 건 싫다. 10킬로는 그냥 걷는 게 나은 것 같고, 밖에서 사먹는 밥 한 끼 한 끼가 아깝고. 이제 학교 다닐 준비가 된 것만 같다. 세월을 한 번 버려보자. 진공 상태에서 마치 이 젊음이 영원할 것 같은 스무살들 틈에서 나도 그 마음을 빨아먹어보자.
처음 일할 때는 나도 후원을 하고 싶어서. 한 달에 오만원씩 기부할 수 있다면 나도 살 자격이 있을 것 같아 일을 하고 나중에는 노동을 통해서만 나를 증명할 수 있는 것 같아 하고 그 다음엔 정말 돈에 연연해서 하고... 나는 지금 어떤 고생을 하는 걸까.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그다지 고되지 않은 나의 상태가 너무 이상하게 느껴진다. 빚 내서 공부하는 게 괜찮은 마음이 희한하고, 별로 공부를 잘하지 않아도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마음도 웃기고. 별 거 없이 웃기는 마음이 여전히 이상하면서도 가끔 피히힉 웃어버리고.
-이 글을 쓴 지 다섯달이 지났다. 나는 그 사이에 부모님으로부터 정기적인 용돈을 받기로 했다. 해가 바뀌고서 거의 일을 하지 않았고 이 삶에도 적응됐다. 내게 돈은 자기혐오 같은 것 아니었을까. 있으면 좋지만 원하는 만큼 있을 수는 없는 것. 그러니까 나는 원하지 않는다고 신포도를 바라보는 것. 내가 미워하는 사람들 만큼이나 내가 바라는 삶이 모순으로 뭉개져 있다는 걸 느낀다.
하자글방에서 나의 사랑, 00이라는 글감을 받고 가장 먼저 쓴 글은 나의 사랑, 고생. 써보니 사랑은 아니고 고생은 더더욱 아닌 것 같아서 묻어버렸다.